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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기정 작성일26-10-23 05:09 조회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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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위기> 포스터
ⓒ 찬란
나임(조 버드 분)은 어머니를 따라 도시에서 외딴 마을로 이사한다. 작은 마을은 교회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이제 낯선 땅에 정착해야 한다. 소년은 동갑내기 라이언(스테이시 클라우센 분)과 곧 친해진다. 어느새 그들은 평범한 우정을 넘어 특별한 관계로 발전한다. 하지만 금욕적인 종교 공동체에서 이들의 관계는 금기시되고, 소년들의 가족은 자식에게 씐 '음란마귀'를 퇴치한다며 퇴마 치료사를 부른다.
한바탕 소동 후 두 소년은 혼절하지만, 가족들은 문제가 해결되었다며 안심한다. 하지만 나임과 라이언에겐 재앙의 시작에 불과하다. 둘에게만 보이는 불가사의한 현상이 그들을 위협한다. 혼자 떨어져 있으면 시도 때도 없이 괴이한 형체가 곁에 등장한다. 그러나 가족은 물론 마을 누구도 그들 말을 믿지 않는다. 게다가 더 끔찍한 건 외톨이가 되었을 때 등장하는 존재가 바로 그들이 사랑하는 이의 형상인 것.
'닫힌 사회'의 고루한 관습이 불에 기름을 붓듯
도시 소년은 낯선 시골 마을에서 두렵고 외롭다. 홀어머니의 잦은 이사로 친구 한 명 제대로 사귀지도 못한 채 또래와 달리 고독한 일상에 몸부림친다. 하필 교회 예배에 빠지면 금방 소문이 퍼지는 오지 마을이라니. 도시로 나가려면 가끔 오는 장거리 시외버스뿐이다. 그야말로 고립무원 신세다. 어머니는 이사한 이후로 자식 속도 모른 채 교회 활동에 푹 빠졌다. 갈수록 원래 알던 어머니가 아닌 듯하다. 유일하게 기댈 수 있던 어머니와도 。. 대화가 줄어든다.
그때 운명처럼 누군가가 손길을 내민다. 마을 토박이지만 먼저 손을 내밀며 다가온 개구쟁이 소년이다. 둘은 금방 친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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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러 나가느라 늘 집을 비우는 어머니 대신에 이제 그들은 찰떡궁합, 영혼의 듀오가 된다. 그 또래 남자애들이라면 으레 그렇듯, 티격태격하면서도 믿음은 깊어간다. 하지만 평범한 소년들의 우정과는 다른 방향으로 어느새 바뀐다. 이건 그냥 자연스레 감정이 이끌린 대로다. 21세기 호주에서 이게 특별한 일도 아닌데.
하지만 여긴 시드니나 멜버른, 브리즈번 같은 도회지가 아니다. 시간이 멈춘 듯 이웃집 숟가락 개수까지 훤한 데다 척박한 자연환경 속 서로 돕기 위해 개척민들이 초창기 상호부조의 구심으로 세웠던 교회가 시대가 변한 후엔 오히려 획일화된 낡고 폐쇄적인 공동체로 뒤바뀐 상태다. 프런티어 정신이 변질한 자리엔 배타성과 수구적 면모만 남았다. 민감한 청소년 시기에 작은 불화나 변덕을 의학이 아니라 검증되지 않은 비과학적 수단으로 해결하려는 것만 봐도.
그 결과는 터무니없는 재앙으로 돌아온다. 의지할 데라곤 둘뿐인 소년들은 필사적으로 수소문한 끝에 퇴마 치료사가 지나간 자리에 앞선 희생자들이 있음을 알게 된다.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생존자를 찾지만 뾰족한 방도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오히려 둘에게 원한을 품은 이에 의해 큰 봉변을 당할 위기를 간신히 모면하지만, 가족조차 자녀의 말보다 고루한 공동체 관습에 더 충실할 따름. 믿고 의지할 데 하나 없는 가운데 공포는 스멀스멀 그들 곁에 다가온다.
가까운 이의 얼굴을 한 공포에 대항할 유일한 방도
일단 어떻게든 버텨야만 한다. 혼자가 되면 어김없이 스륵 공포가 깃든다. 더 끔찍한 건 불가사의한 존재를 소중한 이의 외관과 구별할 수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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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묘하게 허전함을 파고들며 유혹을 건넨다. 마치 전래동화 속에서 쥐가 무심코 버린 사람의 손톱과 발톱을 먹고 둔갑해 등장하는 전설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두려움은 몇 곱절 더 됨직하다. 서양의 흡혈귀가 희생자를 유혹하는 방식과도 일맥상통한다. 감언이설로 꾀어 자발적으로 문을 열게 만든다.
나임과 라이언은 이중 삼중 불안에 휩싸인다. 가족은 더는 믿을 수 없다. 오직 서로를 의지해야만 한다. 하지만 정작 괴물은 그 상대방의 형상을 완벽하게 본떠 출몰한다. 지금 내 앞에 있는 게 친구인지 괴물인지 도무지 분간하기 어렵다.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다. 그냥 속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친근하게 다가온 존재는 금방 초자연적 괴력으로 목숨을 빼앗으려는 악의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둘은 항상 붙어 있거나 혹은 멀리 떨어지거나를 결단해야 한다.
목숨이라도 부지하려면 어떡해야 할까? 늘 사람이 붐비는 장소를 찾으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궁벽한 시골 마을은 해만 지면 인적이 끊긴다. 아무리 홀로 두지 말아달라 호소해도 아무도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는다. 잠깐 빈틈만 생겨도 괴물은 금방 파고든다. 이미 경험으로 터득한 사실이다. 아니면 집에 틀어박혀 문을 잠그고 숨을까? 그래봤자 고립된 상태로는 각개격파 당하기 딱 좋다. 대가는 목숨이다. 착각하지 않도록 아예 멀리 동떨어져 경계하면 어떨까.
하지만 사랑하는 이와 생이별하고 평생 괴물에 쫓기는 게 옳은 선택인지 그들은 고뇌한다. 어차피 뾰족한 해결책은 없다. 소년들을 죽이기 전까지 불가사의한 존재는 멈추지 않을 악의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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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고 적대적인 데다 불신이 팽배한 마을에서 둘이 안전을 보장받을 길도 없어 보인다. 한 명이 멀리 떠난다고 안전보장이 될 일도 아니다. 끝없는 도주와 은둔이라니, 10대 소년들에겐 무기징역의 감옥이나 다를 바 없는 일. 그게 과연 살아있다고 볼 수 있을까?
구약성경 세 번째 장 '레위기'를 제목으로 정한 이유
공동번역 성경 73권 중 구약은 46권에 달한다. 첫 번째는 누구나 아는 '창세기', 두 번째는 '출애굽기'다. 여기까진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상식이다. 그러나 세 번째는? 여기서부턴 머리를 갸우뚱할 이가 확 늘어날 테다. 이른바 '모세 5경'의 시작이다. 그 처음이 바로 '레위기'다. 광야를 방랑하던 히브리 민족에게 십계명을 비롯해 온갖 지켜야 할 규범이 제시되는 경전이다. 준수할 행위도 많지만, 금지 항목이 훨씬 많다. 특히 정결 vs. 불결 기준이 대거 제시된다.
광야에서 민족의 이주를 이끌던 모세는 말 안 듣고 이민족의 폐습에 물든 동포에 애를 먹는다. 당대 중동의 사회, 문화적 풍속을 엿볼 수 있는 오만가지 규정이 선포되고 어기는 이에게 처벌이 행해진다. 12지파 중 레위 지파가 사제 직분을 맡게 된다. 정교 일체 사회에서 사제는 곧 재판과 형벌의 집행자이기도 하다. 이후 레위기를 비롯한 성경 해석은 수많은 논쟁 속에 온갖 갈래로 나뉘어 갈등과 분란의 소용돌이를 불러왔다. 성경무오설부터 과학과 공존까지.
이러한 성경 레위기의 내용은 영화 속 호주 시골 마을의 두 소년이 처한 상황과 교차하며, 단순히 말초적 공포가 아닌 서양 문화에 뿌리 깊게 자리한 성서 왜곡의 폐단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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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내용은 문자 그대로 현대 사회에 대입할 수 없음이 당연한데도 극단적 원리주의를 맹신하는 이들은 아전인수 격으로 자신들이 믿고픈 구절만 콕 집어 고집한다. 두 소년은 어릴 적 잠깐 부정한 욕망에 물든 것뿐이란 규정이다.
동성애는 강제로 고칠 수 있다는 비과학적 맹목은 적지 않은 피해를 불러왔음에도 시골 마을에선 정통 교회라면 당연히 배격할 미심쩍은 방식의 강제 교정을 시도한다. 영화 <엑소시스트>나 <검은 사제들> 속 주인공들도 경악할 지경의 기이한 주술이 행해진다. 더 끔찍한 건 이를 의뢰한 가족 역시 닥칠 일을 모르지 않는다는 것. 사랑하는 자녀의 생명이 경각에 처해도 어쩔 수 없다는 광신은 도저히 사랑으로 보기 힘들다. 사실상 도덕적 수치를 죽음으로 덮으려는 데 불과하다.
구체제의 억압을 끊어내기 위한 결단과 해방의 기로
소년은 전율한다. 가족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거지가 비로소 해석된다. 물론 죽음의 위기는 바로 현관 앞에 와 있는 지경. 부정한 성관계를 맺으면 돌로 쳐 죽여야 한다는 고대의 폐습이 21세기에 형태만 바꿔 부활할 줄이야! 이젠 누구도 믿을 수 없다. 오직 사랑하는 이만 빼고. 물론 조금만 방심하거나 오판하면 얼굴을 베낀 괴물의 먹이가 될 뿐이다. 이건 저주다. 그래도 함께 위기를 헤쳐나갈 연인이 있다면 어쩌면 버티고 견딜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나임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운명은 돌이킬 수 없다고 냉정하게 내뱉는다. 부정한 관계를 끊고 평생 괴물을 피해 살아야 한다는 그녀의 싸늘한 표정은 모세의 시절로부터 아득한 시간이 지나 예수 그리스도가 낡은 규범에 포로가 된 바리새인들을 질타하던 장면과 고스란히 겹친다. 신앙을 위한 진실함이 아니라 껍데기 허식에 매몰될 때 삶의 의지와 희망을 주던 종교는 군림하는 권력이자 현실에 해가 되는 괴물로 순식간에 돌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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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 시골 마을 역시 그렇다.
닫힌 사회는 끊임없이 배타적 공동체를 재생산하려 한다. 낡은 권위로 부족하면 혐오와 차별의 폭력이 빈자리를 채워서라도 사람이 아니라 체제 껍데기를 수호하는 데 혈안이 된다. 물론 종교뿐 아니라 사상과 이념도 포함되는 대목이다. 결국엔 타인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 주류 질서를 벗어난 소수자를 향한 적대만 남는다. 나임과 라이언은 교회와 주민, 심지어 가족들에 의해 '사냥감'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세계 오지에서 벌어지는 '명예 살인'과 다를 게 없다.
두 연인에게 남은 방책은 무엇일까? 초자연적 저주까지 들러붙은 상황에서 그들이 성장하며 .진적으로 작은 사회를 바꾸기는 어렵다. 어른들이 내린 잔인한 형벌에 굴종해 목숨만이라도 부지할 것인가. 불복한다면 괴물에게 어떻게 맞설 것인가.
초자연적 악의와 맞설 '동아줄'은 과연 존재하는가? 대항마가 없다면 소년들은 어떻게 자신을 지켜야 할까? 사랑하는 연인까지 보호할 여력이 과연 있긴 한 걸까?
<레위기>는 혐오의 시대를 작은 시골 마을에 닥친 괴이한 현상으로 은유하며 극단주의가 창궐하는 현실에 경고를 날린다. 소년들이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자 필사적으로 감행하는 사투가 성공할진 알 수 없는 일. 그러나 공포의 질서에 굴종하기보단 당당히 맞선다면 어쩌면 지금 우리 시대가 처한 파국의 위기를 넘어설 해법도 나올지 모른다. 유행에 편승한 공포물인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밀도가 높다. 간결하면서도 정말 무서울 땐 제대로 확 소름이 돋는다.
레위기(Leviticus)
2026 호주 호러, 퀴어
2026.10.21. 개봉 88분 15세 관람가
감독/각본 아드리안 키아렐라
출연 조 버드, 스테이시 클라우센, 미아 와시코브스카
수입 찬란
배급 ㈜레드아이스엔터테인먼트
공동제공 소지섭, 51k
구별할 수 없다는


031-499-3681 
